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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 사랑의 변질을 예고한 바울
   

분당횃불교회 이재희 목사

사도바울이 말세에 사랑이 변질되는 것에 대해서 예언을 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3절과 마태복음 24장 12절에 보면,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이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많은 사람이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선한 마음을 잃었으며, 살아오면서 겪은 상처 속에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또 아파하면서 살고 있다. 결국, 그렇게 아프고, 짜증나고,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사랑하고 베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없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에로스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다. 그 아가페 사랑이 식어졌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예고했던 변질된 사랑은 에로스적인 사랑, 필리아적인 사랑, 스톨게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의 원죄와 자범죄를 다 짊어져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사랑을 먼저 잃어버린 자가 누구일까? 이방인일까? 바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인데 우리가 과연 정말 예수님의 그 사랑을 변질시키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예수를 믿는 어떤 사람이 화초를 12개를 사서 성경에 나오는 열두 제자 이름을 각각의 화초에 붙여주었다. 열두 제자이기 때문에 가룟 유다만 뺄 수 없어 가룟 유다 이름까지도 넣어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물을 주고 가꾸면서 가룟 유다 화초를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을 죽인 너! 예수님을 배신한 너!” 그러다 보니 어느 날 12개의 화초 중에 그 화초만 죽었다고 한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가룟 유다라는 이름 때문에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이 그 화초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 화초가 자살을 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미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너무 중요한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랑이 아가페 사랑이다. 이 아가페는 상대가 나를 미워해도, 나에게 대못을 찔러도, 생명을 주기 위하여 전혀 댓가를 구하지 않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신 십자가의 사랑이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은 엄청난 십자가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아가페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보통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잘 해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느 날 상대가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하면, 상대하기도 싫고 잘 해주고 싶지도 않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여도 사랑이 식으면 서로 재산 싸움을 하고, 이혼할 때도 서로 더 가지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이다. 상대적인 사랑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까지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신 분이다. 이렇듯 예수님은 아가페 사랑을 몸소 보여주셨고, 사랑이 제일인 것을 알려 주셨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 던진 메시지는 너희들이 구할 때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것, 저것 달라고 구하는데, 그 중에 더 큰 은사를 구하고 사모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반드시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고 구해야 할 것이다. 이 사랑, 그 아가페 사랑이 있으면 우리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랑을 잃어버리면 견딜 수가 없다. 자격 없는 우리는 값없이 이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으니 이 땅이 아닌 천국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견디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는 아가페 사랑 즉, 이 십자가의 정신을 무서워 한다. 중생한 성도는 오직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을 망각하지 말고 십자가의 정신, 아가페의 사랑으로 더 달구어져야 한다.

사랑의 변질을 예고했던 바울의 내용을 마음에 새겨 아가페적인 사랑, 이 사랑으로 승리해야 하겠다. 그리고 지극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좋은 인격체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 현대사회에 문제가 생기고 부패하는 이유는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회복해야 한다. 회복해야 산다. 사도바울이 이 사랑의 변질을 예고했지만 우리는 그 안의 변질 된 사랑의 주인공이 되지 말고 사랑을 실천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재희 목사  webmaster@kidok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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